온라인 회의 시 복장에 유의합시다
Pajamas to Online Meetings
올해의 대학원 오픈하우스(Open house; 학과설명회)가 어느새 한 달 뒤로 성큼 다가온 어느날이었다.
오픈하우스라고 하면 점잖게 들리지만, 실상은 한 명이라도 많은 대학원생을 모셔 오기 위한 학과들 간의 치열한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총과 칼 대신 펜과 팸플릿을, 깃발 대신 현수막을 걸고 하는 전쟁 말이었다.
오늘 공과대학 교수들의 미팅도 이 오픈하우스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약속한 시각이 되자, 온라인 미팅 페이지에 사람들이 한두 명씩 접속하기 시작한다. 도착한 순서는 닥터 베리타스 레이시오가 1등이고 다음이 스크루룸, 완·매, 칼립소 순이었다. 스크루룸은 화면 각도를 조금 조정하고서 신사답게 한마디했다.
“레이시오 교수님, 오늘도 방장이시군요.”
온라인 미팅 때마다 방장 뽑기에 당첨되는 운이라는 게 있다면, 하늘은 그 운명을 레이시오에게 점지해준 게 틀림없었다. 혹은 마담 헤르타가 뽑기를 교묘하게 운영하고 있거나.
말이 나와서 말인데, 헤르타 학장이 프로필 아이콘만 띄워 놓고 영원히 ‘자리비움’ 상태인 건 새삼 놀랄 일도 아니지만, 평소에 지각하는 일이 잘 없는 그 아낙사고라스가 아직 나타나지 않는 게 어쩐지 수상쩍었다. 혹시 온라인 상태면서 비디오와 오디오를 꺼둔 이 멤버, SkeMma720가…
“아낙사고라스? 화면이 꺼져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SkeMma720, 즉 아낙사가 화면에 등장했다. 이 시간이면 자택일 텐데, 평소처럼 깔끔한 흰 셔츠 차림이다.
“전부 모이신 것 같군요.” 스크루룸의 듣기 좋은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시작을 알렸다. “헤르타 학장님께서 말씀하시길, 우리 학교 온라인 미팅 시스템을 개조 중이시라고 합니다. 내일 아침쯤이면 화질이 4K로 올라갈 거라고 하시더군요. 지금 화질으로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담을 수 없다면서요. 안타깝지만 학장님의 얼굴을 뵙는 건 내일 이후로 해야겠습니다.”
“들을 건 다 듣고 있으니까, 빨리 천재적인 아이디어들을 내놔 봐.”
“작년처럼 과자 나눠주는 건?” 칼립소가 무난한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스크루룸이 고개를 저으며 이를 반대했다.
“올해부터 현장에서의 음식 섭취가 금지된다고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위생 문제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진짜 원인은 전년도 유전공학부의 프랙털 애프터눈 티 세트에 너무 많은 인파가 몰린 탓이라는 것 같더군요.”
“그거 다행이군.” 레이시오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는 작년에 완·매의 옆 부스를 쓰는 불행을 겪어야 했다. 이 인파로는 정상적인 상담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현장에서 즉석 번호표를 발급하자고 주장했던 것도 그였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번호표가 학생들 사이에서 고가에 거래되고 있었다. 그 사실에 그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장사 판을 깐 사람이 자신의 전략적 파트너였다는 사실에는 더더욱 큰 충격을 받았고.
“물질적 보상도 좋지만, 기본에 충실하는 게 가장 좋은 전략이겠지. 각자 최선을 다해 「상담」하자는 뜻이야.”
“지금 좋은 생각 났어.”
상담이라는 키워드에 칼립소가 손뼉을 쳤다. 화면에 모인 교수들의 이목이 그쪽으로 집중된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칼립소는 그들의 최종 병기가 되어 줄 소재를 발표했다. 바로,
“연애 상담 부스.”
“…….”
“…….”
“괜찮은 생각인 것 같네요. 사랑과 공학은 얼핏 잘 융합되지 않는 주제인 듯하지만, 인간의 인지 영역으로 내려간다면 충분히 신빙성 있는 테마예요. 게다가 학내에 떠도는 소문을 종합해보자면, 저희 동료 중 적임자가 한 분도 아니고 두 분이나 계신 것 같군요: 레이시오 교수님, 그리고 아낙사고라스 교수님?”
“뭐? 아낙사고라스 교수는 그렇다 치고, 왜 나를?” 레이시오가 눈을 크게 떴다.
“이봐, 나는 동의한다고 한 적 없어.” 아낙사 또한 즉시 날카롭게 항의한다.
나머지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두 교수의 거센 항의로 미팅 룸이 혼란스러워졌다. 의견을 정리할 생각으로 스크루룸이 한 손을 들었다.
바로 그 때였다.
“안 돼요!!”
SkeMma720의 화면 안으로 빠르게 뛰어 들어오는 얼굴이 있었다. 카메라 각도 때문에 턱선 위로는 잘려서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 누군가가 헐렁한 티셔츠로 가려지지 않는 훌륭한 어깨의 소유자라는 점 정도는 다들 파악할 수 있었다. 턱선까지 보이는 짧은 머리카락이 하얀색이었다는 것도.
“당장… 당장 나가, 파───”
이어지는 아낙사의 말은 음소거 처리되어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 신비로운 동거인을 방 밖으로 내쫓는 아낙사의 뒷모습 정도는, 4K화질은 아닐지언정 충분히 또렷하게 중계되었다. 참고로 셔츠 아래로는 파자마 차림이었다.
아무도 말을 잇지 못하는 미팅 룸에서 완·매만이 아무 영향을 받지 않은 듯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저 드로마스 파자마, 아주 귀엽네. 다음에 아낙사 교수에게 어디서 샀는지 물어봐야겠어.”
부디 다음 번에는 아낙사 교수가 문을 꼭 잠그고 회의에 참여하기를. 레이시오는 방장의 권한으로 미팅 룸을 해산시키며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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