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ve Potion
[대학 뉴스] “사랑의 도둑…우리 대학에 나타나다?”
지난 17일, 우리 대학 공과대학장실에 의문의 침입자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본교 보안팀에 따르면 그날 23시 47분경 침입자 경보가 울렸으며, 바로 출동한 직원에 의해 현장은 봉쇄됐다. 당시 건물에는, 늦은 시간까지 연구를 계속하던 익명의 A교수와 보안팀 외에 상주하던 인원은 없었다. 분실된 물건 또한 현재까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공과대학장 헤르타 교수(이하 대학장)의 생각은 다른 듯하다. 대학장은 “내 소장품 선반에 변화가 있었다”고 전했다. 학회 참석 후 14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던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57번 소장품인 약품 색이 살짝 달라졌다”고 밝혔다.
이에 기자가 약품의 정체를 묻자, 대학장으로부터 “사랑의 묘약(The Love Potion)”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어떤 비유적인 명명인지에 대한 답은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대신 그는 “장난이든 호기심이든, 지금 자수하는 게 서로를 위하는 길”이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한편,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건이 ‘케미컬 로맨스’의 단초가 아닌가 하는 소문이 조심스럽게 돌고 있다.
기사가 공개되고서 아낙사 교수는 예상치 못한 곤혹을 느꼈다.
분명 아낙사의 요청에 따라 그의 이름이 기사 내용에서 익명 처리되었음에도, 모두가 밤 11시 47분까지 일하는 공과대학 소속 A교수는 아낙사고라스 한 명뿐이라고 단정 짓고 있는 듯했다. 사실이기는 했지만, 약간의 소거법을 거치면 쉽게 도출되는 답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나치게 단정적인 주위의 태도에 아낙사는 제법 짜증이 난 상태였다. 그의 너무 늦은 퇴근을 문제 삼기 시작한 본부 부서부터, 사실 범인은 아낙사고라스 교수였다! 라고 주장하는 아마추어 탐정 동아리의 등장까지, 평소처럼 일하고 연구했을 뿐인 아낙사에겐 사소한 봉변 같은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또 한 가지 귀찮은 점───그건 파이논이 이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기사가 나고 파이논으로부터 곧장 전화가 걸려 왔을 때, 아낙사는 그 또한 너무 늦은 퇴근을 걱정해서 그러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파이논이 마음을 쓰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바로,
“누가 그 사랑의 묘약을 아낙사 선생님한테 쓰면 어떡해요?”
“뭐?”
“앞으로 누가 주는 걸 먹지도, 마시지도 마세요. 전부 의심하세요! 아니다, 차라리 제가 대신 마셔드릴까요?”
그러는 너는 괜찮고? 아낙사는 그렇게 반문하려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세상에 정말 사랑의 묘약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리고 이 캠퍼스에서 어떤 대담한 사람이 그걸 써서 사랑을 쟁취하려고 한다면, 그 상대는 자신보다는 파이논 너일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봤자 파이논은 믿지 않으려고 할 테니까, 굳이 설득되지 않는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는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오히려 호기심이 생기네. 헤르타가 숨겨 둔 비약이라니, 흔히 손댈 수 있는 실험 소재가 아니잖아. 기회만 된다면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고 싶군.”
“선생님…….”
목소리만 들어도 파이논이 지금 귀도 꼬리도 축 내려간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걸 알겠다. 짤막하게 웃으며 아낙사는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예상컨대 10분, 아니 5분 내로 이 강아지 같은 연인이 아낙사의 연구실 문을 황급히 노크할 것이다. 옆방 교수의 석고상 가면을 두고 내기해도 좋았다.
도난 사건으로부터 며칠 후, 캠퍼스에는 말 그대로 연인이 ‘넘쳐나고’ 있었다.
다정히 머리를 맞대고 서가 부재 도서를 신청하는 한 쌍. 학식을 먹겠다는 건지 다른 걸 하겠다는 건지 모를 한 쌍. 셔틀버스 두 자리를 아예 지정석으로 삼은 또 다른 커플. 잔디밭이 세상의 전부가 되어버린 사람들.
평소라면 학우들의 사랑이 넘치는 캠퍼스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봤을 파이논이었겠지만, 그는 지금 불안감이 말 그대로 펑 폭발하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이게 전부 사랑의 묘약으로 인한 걸까? 효과가 이렇게 엄청나다고? 그렇다면 어서 범인을 잡아야만 했다. 누군가 아낙사 선생님에게 그 사랑의 묘약을 한 모금을 먹이겠다는 불경하기 그지없지만 솔직히 그의 아낙사가 늦은 아침 품 안에 안겨 있는 모습을 내려다보면 그런 불경한 마음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나쁜 생각을 떠올리기 전에.
‘걱정 마세요, 아낙사.’ 그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생각한다. ‘아낙사는 제가 지킬게요.’
파이논이 주먹을 들고 홀로 굳건히 맹세할 즈음, 아낙사는 학과장에게 불려 가 있었다. 갑작스러운 호출의 원인은 역시 아낙사의 근태 문제였다. 본부에서 앞으로 총 연구 시간에 제한을 두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발끈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아낙사를 학과장이 테이블로 이끌었다.
“일단 앉아 봐, 아낙사고라스. 차라도 한 모금 하고.”
테이블에 놓인 두 개의 찻잔에서 따끈한 김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걸 본 아낙사가 순간 멈칫했다. 며칠 전 파이논이 귀가 따갑도록 주입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앞으로 누가 주는 걸 먹지도, 마시지도 마세요. 전부 의심하세요!
“아낙사고라스?”
“…….”
어느 새 파이논이 심은 의심의 씨앗이 아낙사 안에서 싹을 틔운 모양이다. 칼립소(아낙사가 부르는 대로라면 세르세스)가 상황을 알겠다는 듯이 씩 웃었다. 학과장으로서 그도 교내에 떠도는 소문에 무지하지 않았다.
“설마 내가 뭐라도 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손님용 찻잔이 은근하게 아낙사 앞으로 들이밀어졌다.
Q. 학과장이 장난 삼아 동료 교수에게 준 홍차에 무언가를 탔다고 가정했을 때, 그 무언가가 사랑의 묘약이었을 확률을 계산하시오.
정답: 0
…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나 학과장=세르세스, 교수=아낙사고라스, 사랑의 묘약=마담 헤르타의 소장품이라는 값을 각각 대입해 보면, 계산식의 답은 이랬다.
‘0에 가깝지만 0은 아니다.’
그럼에도 아낙사는 찻잔에 손가락을 끼웠다. 달콤한 향이 나는 뜨거운 홍차가 목구멍에 닿기까지 3, 2, 1…….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복도에서 아낙사를 기다리고 있는 건 파이논의 뒷모습이었다.
삐죽 솟은 하얀 머리카락이 오늘 따라 유달리 자아를 가진 듯 살랑살랑 흔들린다. 맞은 편에서 보안팀 제복을 입은 직원이 교수인 아낙사를 알아보고 슬쩍 목례했다. 아낙사가 끼어들기 전까지 파이논은 그 직원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던 듯했다. 아낙사는 파이논의 옷 자락을 꾹 잡아당겼다.
“파이논, 여기서 뭐 해?”
“아낙사 선생님! 지금 범인을 추적해 보려고 하는 중이에요, 그 사랑의 묘약 사건 범인이요. 대체 어떻게 하면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물건을 바꿔치기 할 수 있는 걸까요?”
“…….”
“CCTV에도 흔적이 남지 않았다니… 아, 제 걱정은 마세요. 위험하다 싶으면 적당히 마무리할 테니까요.”
“그게 아니고, 나랑…….”
퍼뜩 정신을 차리고 아낙사가 제 입을 가렸다. 하마터면 공공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해버릴 뻔했다. 수고하라는 말로 대충 얼버무리고 아낙사는 등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선생님!”
달려드는 발소리, 그리고 허리를 꽉 끌어안는, 소유욕이 느껴지는 두 팔. 아낙사는 반사적으로 등 뒤의 기색을 살폈다. 복도 끝에서 보안 직원이 곤란한 듯 그의 시선을 피했다.
“‘나랑’, 다음에 이어질 말을 못 들었는데요?”
아낙사가 조심스럽게 몸을 돌렸다. 파이논이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뺨도 귀끝도 이렇게 새빨갛게 물들여선 아낙사의 눈에 한없이 귀여워 보일 뿐이다. 발돋움해서 아낙사는 그 붉어진 한쪽 귀에 대고 무엇인가를 속삭였다.
“사랑의 묘약의 효과, 실험해 볼 생각 있어?”
[대학 뉴스] “캠퍼스에 풀린 사랑의 묘약…알고 보니 가짜?”
지난 20일 보도에서 본지는 공과대학장실 침입 사건을 전한 바 있다(“사랑의 도둑…우리 대학에 나타나다?” 참조). 이후 행방이 묘연한 ‘사랑의 묘약’을 목격했다거나 심지어 마셨다는 증언이 속출하며, 캠퍼스 전체가 잠시 연애 기류에 휩싸였다.
하지만 확인 결과 교내에 유통된 수십 병의 약품은 정체불명의 가짜였다. 본부 관계자는 “유통 경로를 추적 중이지만, 워낙 은밀하게 움직여 실체를 잡기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공과대학장 헤르타 교수는 본지와의 후속 인터뷰에서 “가짜 약의 성분은 평범한 설탕물이었다”고 일축했다. 한편 학내 커뮤니티에서는 “덕분에 고백할 용기를 냈다”, “묘약 따위 없어도 결국 마음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낭만적인 후기 글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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