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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낙사] (현대AU)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

Proof That We Are Alive

 

  살아있는 세포가 실은 빛나고 있다는 말, 들어본 적 있을까?

 

  아, 그런 표정 지을 거 없어. 들어본 적 없다 해도 전혀 문제될 건 없거든.

  지금 네 머릿속을 스치는 의문이 어떤 것일지 알아. ‘그게 사실이라면 거울 속 내가 190cm의 인간 전구처럼 빛나지 않는 이유는 뭐지?’ 답은 아주 간단해. 네 빛이 너무 미약하기 때문이야. 생명체가 뿜어내는 이 광자 파동은 검출기로 관찰해보면 1초당 단 하나, 많아 봐야 고작 몇백 개가 1제곱센티미터의 표면에 도달할 뿐이거든. 그러니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를 관측할 수 없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해. 우리 주변엔 이를 압도할 다른 광원이 너무 많거든.

  초약광 생체 광자. 그게 이 빛의 정식 명칭이야. 너, 나, 우리는 모두 살아 있는 동안 세포와 조직에서 이 초약광 광자를 끊임없이 방출하지. 그리고 인체의 생명 활동이 뚜렷한 순간에 세포의 빛도 더 밝게 타올라.

  그러니 헤르타 말대로 이걸 「생명의 빛」이라고 불러도 지나친 비약은 아닐 거야. 응, 나는 이 이름이 제법 마음에 들어.

 

  완·매의 듣기 좋은 모노톤이 거기서 멈췄다.

  맞은 편에 보이는 미닫이문의 좁고 긴 유리창 너머로 오케이 사인을 그린 손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다른 방에 모인 연구팀이 실험 준비를 마쳤다는 신호다. 드디어 오늘 실험이 시작된다는 생각에 완·매의 잔잔한 마음에도 작은 떨림이 일었다.



  「생명은 왜 빛을 내는 걸까?」

  세포는 초약광 광자를 방출한다. 그렇다면 이 빛은 어쩌다 나온 거고, 무슨 목적을 수행하는 걸까? 기원은 뭐고, 목적은 뭐지?

  완·매가 이 의문을 처음 공유한 상대는 헤르타였다. 그때 그들은 여느 때처럼 오후 3시의 티타임을 갖는 중이었고, 헤르타는 스크루의 블랙 커피에 몰래 설탕을 넣으려다 말고 코웃음을 쳤다.

  “그 정도로 미약한 광자에 특별한 기능이 있을 리가 있겠어? 대사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일 뿐일 거야. 마치 촛불 옆에 튀는 작은 불꽃 같은 거지. 굳이 따지자면 인체가 살아 있다는 걸 알려 주는 지표 정도는 될 수 있겠네. 생명의 빛이라고 하면 듣기 좋잖아? 앞으로 그렇게 부를까?”

 이 말은 완·매에게 더 강한 동기를 부여할 뿐이었다. 며칠 후 완·매는 같은 질문을 다른 동료 교수들에게도 던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헤르타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애초에 생체 광자의 존재부터 의심하는 보수론자도 있었다. 그러다 완·매는 처음으로 자신의 생각에 찬동하는 동료와 만나게 되었다. 뇌인지과학의 칼립소 교수였다.

  “생체 광자의 기원을 파악하려면,” 칼립소가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게 정답일 거야. 감정이나 기억, 사고가 개입될 때 뇌 광자가 특정한 패턴을 보인다면, 광자는 단순히 대사 부산물이 아니라 정보를 담은 신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의견대로 완·매는 실험을 설계해나갔다. 닥터 레이시오의 전문성 없이는, 초약광 광자 검출기를 머리에 쓰는 헬멧처럼 얇고 가벼운 인체공학적 형태로 만들어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닥터 레이시오의 사업 파트너에게도 감사를. 이 얼굴 모르는 인물이 특수 광수집 렌즈와 케이블 제작·납품에 큰 도움을 줬다. 두 사람의 협업 덕분에 연구팀은 암실 밖 환경에서 뇌 표면의 생체 광자를 포착하는 게 가능해졌다.

  물론 시·공간·스펙트럼 코딩에 수고해준 헤르타와 스크루룸 팀도 잊어서는 안 된다. 닥터 레이시오와 그의 파트너 콤비가 광자 신호를 포착하는 역할을 맡았다면, 이를 연산하여 모니터 화면에 표현해주는 역할은 완·매의 티 타임 멤버들 몫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완·매의 시선이 천천히 오늘의 피실험자에게로 옮겨간다.

  아낙사고라스 교수에게도 디저트 한 상자를 보내야겠지. 그의 협조와 이토록 훌륭한 피실험자, 아니, 제자를 길러 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로 말이었다. 이름은 파이논이라고 했던가. 처음 이 실험을 계획했던 순간부터 완·매는 그를 피실험자로 점찍어두었다. 이토록 완벽한 샘플이 존재하는데, 다른 후보군은 염두에 둘 필요조차 없었다.

  완·매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의 뇌는 저 빛나는 파란 눈동자만큼이나 아름다운 정보 신호로 반짝일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곧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시키는 대로 의자에 앉아서 파이논은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상상과 달리 관찰실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고, 연구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화면을 들여다보거나 모자처럼 생긴 장비에 연결된 케이블들을 조심스럽게 정리하는 중이었다. 저게 아마도 완·매 교수님이 말했던 그 장치일 거라고 파이논은 추측했다.

  “편하게 앉으세요.”

  파이논의 머리에 그 모자 같은 장비를 씌우며 연구원이 그렇게 말했다. 머리카락이 눌려 파이논의 눈을 가리자 다른 연구원이 달려와 얼른 앞머리를 정리해준다. 전반적으로 실험이라기보다는 치과에 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미 들으셨겠지만 다시 한 번 설명 드릴게요. 지금부터 이 태블릿 PC로 몇 종류의 사진을 보여 드릴 거예요. 별다른 액션을 취하실 필요는 없고, 그냥 가만히 보고 계시기만 하면 됩니다.

  지금 쓰고 계신 헬멧은 포톤 캡(Photon Cap)이라고 부르는 장치에요. 캡에는 광수집 렌즈가 박혀 있고, 연결된 섬유 케이블은 캡이 수집한 광자가 이동하는 통로라고 생각해주시면 돼요. 매우 민감한 장비니까, 최대한 편하게 앉아서 되도록이면 머리를 움직이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혹시라도 어지러우면 바로 손을 드시고요.”

  어째 주의사항까지 정말 치과같다. 파이논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려다 머쓱하게 웃고 말았다.

  “그럼 시작합니다.”

  연구원의 손에 들린 태블릿 화면이 켜졌다. 동시에 파이논의 머리 위 장비로부터 기계가 깨어나는 낮은 허밍음이 들려온다. 아무것도 할 필요 없이 그저 사진을 보고 있으면 된다고 했지만, 약간의 긴장이 등줄기를 스치는 건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첫 번째 이미지는 파란 하늘이었다. 다음은 캠퍼스 건물, 대화하는 사람들, 연구동 고양이, 오븐에서 갓 나온 따끈한 빵… 무작위 스톡 이미지 같은 사진들이 5초 간격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또 나타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어느새 긴장이 풀리고, 다소 지루하다고까지 느껴질 무렵이었다.

  “어?”

  파이논이 저도 모르게 몸을 바짝 당겨 앉았다. 이번 사진에는 다름 아닌 파이논 자신이 찍혀 있었다. 사실 파이논의 독사진은 아니고, 다른 학생들도 흐릿하게 렌즈 안에 들어와 있었다. 다만 파이논이 스스로에게 집중한 까닭은 그가 이 사진이 찍힌 날을 똑똑하게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그건 학과에서 단체로 현장 실습을 나갔던 날이었다. 인솔 교수인 아낙사는 버스 맨 앞에 혼자 앉아 있었고, 갓 입학해서 강의실 찾는 것도 고역이던 푸릇푸릇한 신입생 파이논은 수십 번을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 용기를 내 아낙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물어보았다. 선생님 옆자리가 비어 있냐고. 차멀미를 할지도 모른다는 그닥 멋지지 않은 변명까지 덧붙이면서 말이었다.

  아낙사가 고개를 끄덕인 순간 파이논이 느꼈던 환희와 설렘이란——그리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파이논은 차멀미를 해야 한다는, 적어도 그런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설정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낙사의 “멀미는 좀 어때?”라는 질문에,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버린 것이다.

  “다음에는 옆자리에 앉고 싶으면 그냥 그렇게 물어봐. 거짓말할 필요 없으니까.”

  은근하게 웃으며 아낙사는 그렇게 말해주었다. 막연한 동경이 구체적인 사랑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이때였을 거라고 파이논은 생각한다.

  …잠깐, 그런데 대체 누가 이 사진을 실험에 제공한 거지?



  광자들은 실시간으로 케이블을 통해 전달되며 모니터에 빛의 지도를 그렸다. 밤하늘의 황금빛 별들처럼 끝없이 반짝이는 파동. 별처럼 박힌 광자 하나하나는 한 인간이 살아있다는 증거, 그가 사랑을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역시 아름다워,” 완·매가 감탄한다. “역시 완벽한 샘플이야.”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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