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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r/au

[파이낙사] (현대AU) 지역 한정 드로마스 피규어 사건

Oh, Limited Dromas Plushie, Why Art Thou Limited Dromas Plushie? 




  아낙사 선생님의 수업을 빠지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드로마스™ 피규어 시리즈가 지역 콜라보 라인업을 공개한 이래로, 파이논은 언젠가 이날이 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 오고 있었다. 이제까지의 라인업이 오크마 통상 버전(목욕탕 속 드로마스), 크렘노스 제전 한정판(헬스장 단골 드로마스), 스틱시아 와이너리 콜라보(포도를 밟는 드로마스) 였다면, 다음 타자가 그의 고향 엘리사이 에데스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물론 이 쟁쟁한 대도시들에 비하면 그의 고향이 작고 소박한 시골 마을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뭐 어때서? 고향을 사랑하고, 드로마스를 사랑하는 연인을 가진 이 청년은 굴하지 않고 매주 드로마스™ 웹사이트 고객의 소리함에 익명으로 메시지를 남겨 왔다.

  담당자님들, 지금은 지역 상권에 주목해야 할 시대입니다. 소도시와 상생하는 기업, 훌륭하지 않은가요? 그나저나 엘리사이 에데스라는 마을을 들어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그곳의 밀밭이 수확 철이면 그렇게 아름답다고 하더군요. 밀밭을 가르는 바람은 청량하고, 속세의 모든 때 묻은 기억을 잊게 해 줄 만큼 상쾌하다던가요. 드로마스가 거닐기에 최적의 땅이라고 생각하시지 않으시나요.

  이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인턴으로라도 입사해야 하나, 하고 파이논이 고민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마침내, 마침내 파이논의 노력이 보상받았다. 드로마스™ 지역 한정 2차 라인업에 엘리사이 에데스가 포함된 것이다!

  흥분해서 콩콩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파이논은 공지사항을 차근차근 확인해나갔다.

  엘리사이 에데스 한정판은 수량에 제한이 있습니다. 1인 1개 구매 가능하며, ⚪︎월 ⚪︎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엘리사이 에데스 ××× 지점에서 판매합니다.

  이럴 수가.

  “안 돼……!”

  목요일 오전에는 아낙사 교수님의 <영혼물리학 심화I> 수업이 있었다, 그리고 파이논은 (당연하게도) 그 수업의 수강생이었고.

  이렇게 하여 일생일대의 양자택일이 엘리사이 에데스의 파이논 앞에 놓이게 된 것이었다. 아낙사 선생님께 드로마스 피규어를 선물하기 위해, 아낙사 선생님의 수업을 빠질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아낙사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침부터 커피 머신이 망가지지를 않나, 대신 들른 카페에서 그의 주문을 누락하질 않나. 평소보다 늦게 나온 탓에 출근길이 막혔고, 캠퍼스에 도착했을 무렵엔 아니나 다를까, 제1주차장이 이미 만차였다.

  캠퍼스를 일주하다시피 해서 어찌저찌 빈 자리를 찾고 나니 벌써 10시 수업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아낙사는 바쁘게 강의실로 걸어 올라갔다. 대체 누가 그의 수업을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 6층에 배정한 거지? 아침을 여는 파이논의 문자—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사랑해요, 학교에서 만나요!—가 여태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도 아낙사의 기분을 전혀 낫게 하지 않는 요소였다. 5분에 한 번꼴로 알림을 확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아낙사는 조금 짜증을 내며 휴대폰 전원을 꺼버렸다.

  6층에 도착했을 때 아낙사의 운동 부족인 마른 몸은 빠르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끼익 하고 강의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어쩐지 불길했다. 순간 강의실이 고요해지고,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아낙사에게 모였다. 아낙사는 교실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한 바퀴를 둘러봤지만 그가 기대하는 하얀 머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엘리사이 에데스의 파이논이 어디 갔는지 아는 사람?”

  그렇게 묻는 아낙사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수십 배는 낮고, 수십 배는 위협적이었다. 학생들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한마음 한뜻으로 생각했다. 파이논, 이번엔 또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돌아오면 바로 교수님 앞에 납작 엎드려서 빌도록 해. 그렇지 않으면 우린 너의 명복을 빌어야만 할 테니까…….



  어깨가 조금 뻐근하다 싶더니 어느새 저녁 10시 반이었다. 아낙사는 자주 쓰지 않는 안경을 잠시 내려놓고 두 눈 사이를 손으로 꾹 눌렀다. 파이논한테는 여태껏 연락이 없었다. 건물 소등 시간이 가까워지는 만큼 오늘 여기서 밤을 새울 것인지 아니면 정리하고 귀가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어떻게 할지 멍하니 생각하고 있는데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직 여기 계셨네요.”

  들어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불쑥 얼굴부터 내민 사람은, 물론 파이논이었다.

  “연락을 안 받아서 걱정했어요.”

  아. 그러고 보니 오전 중에 휴대폰 전원을 꺼버린 뒤로 다시 켜지 않았다. 뾰족해졌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는 걸 느끼며 아낙사는 의자를 파이논 쪽으로 빙글 돌렸다.

  “하루 종일 어디서 뭘 하다가 이제 나타나?”

  “저녁은 드셨어요?”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 파이논은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멋쩍게 웃었다. 부스럭부스럭,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서 파이논이 책상 위로 올려놓았다. 한참을 살펴보고서야 아낙사는 그것이 납작해진 샌드위치 2인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같이 먹으려고 사 온 건데… 아하하, 보시다시피 완전히 찌그러졌네요. 저 때문에 기다리셨다면 죄송해요. 최대한 빨리 오려고 했는데, 비행기가 연착돼서요.”

  “비행기?”

  “네. 엘리사이 에데스에 다녀 왔어요.”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그런 건 아닌데요.”

  파이논의 목소리가 작아지더니 갑자기 그가 뺨을 확 붉혔다. 그는 눈을 꼭 감고, 등 뒤에 숨기고 있었던 상자를 앞으로 내밀었다.

  “이건……!”

  지역 한정판 드로마스 피규어 패키지(2탄)!

  아낙사는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밀밭과 하늘, 그리고 말풍선 속 “저는 엘리사이 에데스에서 왔어요!” 라는 깜찍한 글씨체. 뚜껑을 열자 손바닥 만한 하늘색 드로마스 피규어가 그를 사랑스럽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쩐지 시리즈의 다른 형제들보다 큼지막하고 느긋한 인상이었다. 머리에 밀로 만든 화관을 쓰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제 고향에서 온 아이예요. 저처럼 아껴주세요.”

  파이논이 자랑스럽게 말한다. 여느 한정판 패키지처럼 상자에는 테마 지역에 대한 소개가 나열되어 있었다. 엘리사이 에데스에 대해 아시나요? 그곳의 드로마스는 품질 좋은 밀 껍질을 씹으며 방목되는 환경에 익숙하답니다. 순간 아낙사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퍼졌다.

  “드로마스들이 이렇게 행복하다면 네 고향은 확실히 좋은 곳이겠네.”

  “그럼요. 언젠가 함께 가요, 선생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들을 보여 드릴게요.”

  “만약 가게 된다고 해도 수업이 있는 날은 아니겠지. 참고로 오늘 출석 점수 1점 감점이야, 파이논.”

  “역시 엄격하시네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파이논은 내심 웃고 있었다. 더 심하게 혼날 줄 알았는데, 최악의 경우 아낙사가 실험실 문을 걸어 잠그고 며칠간 열어주지 않는 것까지 상상했는데, 이 정도면 부드럽게 넘어갔다고 생각한다. 물론 절대 그렇게 말할 생각은 없지만.



  엘리사이 에데스에서 날아 온 하늘색 드로마스는 아낙사의 책상 위, 그의 시선이 가장 잘 닿는 곳에 영구히 자리 잡게 되었다.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면 아낙사는 그 자그마한 친구에게 종종 말을 걸곤 한다. 오늘도 귀엽구나 꼬마야. 날씨가 제법 추워졌어. 지금쯤 네 아빠가 올 시간인데 조금 늦어지는 것 같네.

  그건 아무도 모르는 아낙사 혼자만의 비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