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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낙사] (현대AU) 아낙사 선생님 방송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새해 첫날,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아침 해와 함께 파이논을 반긴 것은 머리를 반으로 쪼갤 듯한 두통과 타는 듯한 목마름이었다.

  대체 간밤에 얼마나 마신 건지 모르겠다. 파이논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어제는 (그게 벌써 작년이라니!) 친구의 레스토랑 가오픈일이었다. 이를 기념하여 대학 동기들과 동아리 친구들, 선후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가 대학 시절 속해 있던 미식 동아리에는 밑 빠진 오크 통, 끝을 모르는 바다 같은 술꾼으로 유명한 선배가 있었던지라, 어느 정도 마시게 될 것을 예상하고 애초에 차 키는 챙겨 나가지 않았다. 사지 멀쩡한 채로 옷도 갖춰 입고 현관 복도에 누워있는 걸 보면 어떻게든 제 발로 집까지 돌아온 모양인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도무지 기억나질 않았다. 이렇게 취해 본 적은, 아니, 애초에 남들 앞에서 인사불성이 되어 본 것 자체가 파이논의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선을 지키는 일만큼은 자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현관 바닥은 그런 파이논을 비웃듯이 핑글핑글 회전하며 도무지 가만히 있어 주질 않는다.

  - 핑!

  경쾌한 알림 소리가 겉옷 안주머니에서 울려 퍼졌다. 파이논은 차가운 바닥에 볼을 기대고 엎드려 있는 참이라, 소리의 근원인 휴대폰을 꺼내려면 팔을 움직여서 주머니를 뒤지거나, 몸을 반대로 뒤집어 눕는 수밖에 없었다. 두 행동 모두 지금 그에겐 너무 벅찬 임무였다. 엎드려 누운 자세 그대로 그는 알림 소리가 이대로 잦아들기를, 누군지는 몰라도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잠시만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기를 간절히 바랐다.

  틱, 택, 틱, 택… 손목시계의 초침이 파이논의 숨소리에 맞춰 단조롭게 움직이고, 그렇게 파이논은 잠깐의 평화를 얻는 듯했다.

  - 핑!

  두 번째 알림.

  한숨이 파이논의 목을 긁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가 가까스로 휴대폰을 꺼냈다. 1월 1일이라는 기념할 만한 날짜가 휴대폰 주인을 반갑게 맞이한다. 알림 센터를 위아래로 스와이프하니 그를 걱정하는 친구들의 메시지가 몇 시간 간격으로 우르르 쏟아지고 있었다.

  「파이논 님, 괜찮으신 거 맞죠?」

  「HKS. 죽었으면 죽었다고 말을 해.」

  「이걸 추천해 드려요! >> (숙취 해소법이 담긴 블로그 링크), (부끄러운 기억에서 도망치는 데 도움이 되는 테라피 사이트 아티클)」

  링크를 누르려다 말고, 파이논의 손끝이 멈칫한다. 그러고 보니 방금 그 두 번의 알림 소리는 누가 보낸 문자였던 거지? 알림 스택 최상단으로 거슬러 올라간 파이논은, 거기 떠 있는 메시지를 본 순간, 그를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숙취의 중력도 잊은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SkeMma720 님이 생방송 중입니다! (오전 11:03)’

  “아낙사 선생님!”

 

  아낙사 선생님.

  풀네임 아낙사고라스. 스트리밍 플랫폼 아이디 SkeMma720.

  파이논과 친구들이 졸업한 대학의 정교수이자, 파이논이 졸업 학점을 채우기 위해 수강했던 교양 글쓰기 수업에서 A 일색이던 파이논의 성적표에 낙제점이라는 첫 얼룩을 남겨 주었으며, 그 후로 파이논이 재수강의 재수강을 하게 만들고, 졸업식 날 “이제 너에겐 더 가르칠 게 없다”는 말로 파이논의 파란 눈에서 커다란 눈물방울을 뚝 떨어지게 만들었던 장본인. 그리고…….

  파이논이 그 그림자까지도 숭배해 마지않는 사람.

  송곳처럼 머리를 찌르는 두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파이논은 황급히 그의 스트리밍 채널에 접속했다. 아낙사 선생님의 스트리밍 주제는 늘 정해져 있었다. 최대 시청자 수가 수천 명이 되는 게 신기할 정도인 자연과학 또는 철학 이야기. 정규 방송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내키는 날, 내키는 시간에 급습하듯이 생방송을 시작해서는,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다가 갑자기 종료 버튼을 누르고 사라져 버린다. 본명을 밝히거나 자기 신상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없다. 모임 친구가 귀띔해주지 않았다면 파이논은 이 방송의 존재조차 몰랐을 것이다.

  게다가 아낙사 선생님의 채널은 지난 방송을 아카이빙하는 기능을 일부러 막아 두어서, 흘러간 스트리밍은 말 그대로 시간의 시냇물 너머로 흘러가 버릴 뿐이었다. 파이논이 1분, 아니, 1초라도 선생님의 방송을 놓쳤다는 생각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까 말했듯이 오늘은 평소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할 거야.」

  오늘도 화면에 잡힌 아낙사 선생님의 얼굴은 차분하다. 새해 인사를 건네는 시청자들의 채팅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평소 자주 입는 모크넥 패션은 어디로 가고, 부들부들해 보이는 은회색 카디건 차림이었다. 그게 또 아낙사 선생님의 날카로울 만큼 아름다운 신체적 특징들과 잘 어우러져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아니, 실제로 파이논의 눈이 조금 부셨다. 전적으로 숙취 탓만은 아니라고 그는 믿고 싶다.) 그나저나 평소와 조금 다른 이야기라니? 파이논은 살짝 얼굴을 갸웃했다가 속이 울렁거려 입가를 황급히 가린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이런 사연이 도착했더군. 방송을 시작하고 사연을 받는 건 처음이라, 공유해 보고 싶어져서 말이지.」

  젠장. 파이논이 뒤늦게 후회 섞인 주먹을 쥐었다. 그러고 보니 아낙사 선생님의 스트리밍 채널에는 ‘어떤 질문이든 환영, 단, 내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지 말도록’ 이라는 문구와 함께 그의 대외용 이메일 주소가 적혀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가 가장 먼저 메시지를 보내는 건데.

  「제목 — ‘아낙사 선생님 방송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선생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파이논은 분개하고 말았다. 감히 누가! 아낙사의 방송은 교육적이고, 철학적이며, 아무튼 인터넷이 탄생한 이래 가장 훌륭한 방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체 어떤 보는 눈 없는 놈이 저런 배은망덕한 사연을 보냈단 말이야?

  「‘사람들은 아낙사 선생님의 방송을 봐서는 안 됩니다. 특히 저는요. 동료 시청자들도 이 위험성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 사연을 보냅니다.

  저는 선생님의 방송을 사랑하는 시청자입니다. 방송을 시작했다는 알림을 받으면 어디 있더라도—지하철 안이든, 일하는 중이든, 심지어는 샤워 중이었다고 해도 상관없이 바로 생방에 접속해요. 저는 주로 보험사를 고객으로 하는 골동품 감정 일을 하는데요, 사람들 상상과 달리 작업 중엔 제법 위험한 도구들을 쓰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는 음악을 듣거나 라디오를 들으며 작업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자만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스스로 제 일을 잘하고 있다는 자신이 있었거든요.

  ……아낙사 선생님의 방송을 보기 전까지는요.

  그날, 저는 선생님의 방송을 틀어놓고 특별히 복잡한 경첩 분리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조심해야 한다는 건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선생님이… 아, 정확히 말씀드릴게요. 8월 18일 오후 5시에 시작하신 올해의 134회차 방송에서, 날이 덥다며 갑자기 민소매 차림으로 나타나셔선 머리를 높게 묶으셨죠.

  그 순간 제 왼손 두 번째 손가락에 4cm가량 작업 도구가 박히며, 피가 작업 테이블을 흥건하게 적셨어요. 그런 줄도 모르고 저는 화면에 잡힌 선생님의 드러난 두 팔에 정신이 팔렸었고요. 5시 31분에 방송이 끝나고 나서야 저는 아픔을 느끼는 법을 기억해 냈답니다.

  선생님의 방송은, 아뇨, 선생님이라는 분 자체가 인간의 집중력을 너무나 앗아가는 나머지, 선생님의 방송은 누가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두 손 두 발을 묶어놓고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시청자들이 저와 같은 운명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도록 이 경고장을 보냅니다. 아낙사 선생님의 방송은 위험합니다, 여러분들. 긴 사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향한 채, 아낙사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러고는 붉은 혀를 날름하고 드러내더니 사연을 읽느라 마른 입술을 핥는다. 파이논은 숙취로 인한 두통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선생님, 제발, 제발 여기서 멈춰 주세요. 그 다음 문구는 부탁이니 제발 읽지 말아 주세요.

  「——엘리사이 에데스의 파이논 드림.

  아.

  간밤의 기억이 물밀듯이 파이논에게 쏟아져 들어왔다.

  그를 푸른 금빛의 태양 물고기라고 부르던 선배와 대작하던 기억. 초록 돌고래가 그렇게 좋으면 지금이라도 고백하지 그러냐는 선배의 차분한 조언. 질세라 파이논을 부추기던 선배들과 동기들. 아낙사 선생님의 이메일 주소를 외워서 입력한 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긴 메일을 적어 내려갔던 파이논 자신의 손가락.

  「엘리사이 에데스의 파이논. 지금도 보고 있나?」 

  “ …… 네, 선생님. 저 여기 있어요.”

  「내 방송이 그렇게 위험하고 불온하다고 생각한다니 유감이야.」

  “맞는 말씀이에요, 어서 제 배은망덕한 머리를 한 대 쳐주세요…….”

  「나로 인해 입은 부상은, 벌써 몇 개월이 지난 일이기는 하지만 자업자득이라고밖에 할 수 없겠군. 누가 도구를 손에 들고 그렇게 한눈을 팔라고 했지? 하지만…….」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아낙사가 턱을 만지작거렸다. 파이논이 지금 헛것을 보는 게 아니라면, 스트리밍 화면 속 아낙사의 얼굴은 거의 장난기가 가득해 보였다.

  「다친 건 다친 거지. 그러니까 배상해 주겠어.」

  “……네?”

  「내 연구실 위치는 아직 잊지 않았겠지? 기다리고 있을 테니 받으러 와. 네 몫의 배상을.」

  “선생님?”

  「이상. 오늘의 방송을 마치지.」

  스트리밍 종료.

  파이논은 정말로 물고기가 된 것처럼 입을 뻐끔거리며 새까맣게 변한 휴대폰 화면을 멍하니 들여다봤다. 내가 지금 꿈꾸는 건 아니겠지? 그가 화면에 비친 자신의 볼을 세게 꼬집어 보고, 너무 아파서 눈물을 찔끔 흘린다. 조금 살살 꼬집을 걸 그랬다.

  기다리고 있을 테니 받으러 와. 네 몫의 배상을.

  방송을 끄기 전 아낙사 선생님이 했던 말이 메아리처럼 그의 귓가를 맴돈다. 그는 수 초간 그렇게 현관에 엎어져 있다가, 벼락에 맞은 사람처럼 재빠르게 몸을 털고 일어났다.

  샤워, 샤워부터 해야 하나? 옷은 뭘 입어야 하지? 아아, 제길, 그렇게 세게 꼬집지 말 걸 그랬다. 거울 속으로 보이는 한쪽 볼이 꼴사납게 붉게 물들어 있었다. 간밤의 술 냄새가 나는 옷가지를 허물 벗듯 하나씩 벗어던지며 파이논이 샤워 부스로 달려 들어간다. 급한 나머지 온수를 틀 겨를도 없었지만, 찬 물이든 더운물이든 아마 지금의 파이논에게는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가 침대 위에 던져 놓은 휴대폰이 몇 번인가 울리더니, 이윽고 배터리가 다해서 화면이 꺼졌다. 파이논은 아마도 앞으로 수 시간 동안 확인하지 못하겠지만, 그가 속한 단체 채팅방에서는 간밤에 모임을 가진 선후배 그리고 동기 간에 즐거운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내가 뭐랬어, 성공할 거랬지! 자자, 다들 어서 걸었던 돈 내놔.」

  「정말 성공할 줄은 몰랐어요……. 파이논 님, 축하드려요.」

  「하. 저 선생도 정말 취향 한 번 특이하군.」

  「축하해, 푸른 금빛의 태양 물고기. 그런데 우리 어제 시합은 무승부로 끝났잖아. 언제 재개할 수 있을까.」

  「선배님, 아마 오늘은 힘들지 않을까요? 아마 내일도요. 저희 파이논 님과 아낙사 선생님에게 시간을 좀 드리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