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sr/au

[파이낙사] (AU) 1 + 1 + ... 1? ①





#  누페마 공지방💗  >
11 online


카스토리스  21:32
선생님

카스토리스  21:32
아낙사 선생님, 계세요?

히아킨티아(관리자)  21:33
@아낙사고라스 선생님~

 

아낙사고라스  21:45
무슨 일이지?

 

히아킨티아(관리자)  21:46
드디어 나타나셨네요~

히아킨티아(관리자)  21:46
들으셨어요? 저희 기숙사 근처 산에 강아지가 돌아다니고 있대요

 

아낙사고라스  21:47
?

 

히아킨티아(관리자)  21:48
저랑 카스둥이 둘이서 보러 가기로 했는데, 선생님도 관심 있으신가 해서요~




 

  한 손에는 손전등, 한 손에는 장우산을 들고, 아낙사는 빠르게 숲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도대체가, 제자들의 겁 없는 발상에는 아낙사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보호자도 없이, 이 밤늦은 시간에 단둘이서 들개를 보러 가겠다니.

  그가 교단에 설 때마다 강조하는 말, “두려움을 넘어 앞으로 나아가라”는 학문적인 개척 정신을 뜻하는 것이지, 안전장치도 없이 번지점프를 하라거나 당장 오늘부터 걸어서 앰포리어스 일주를 시작하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물론, 누군가가 반짝이는 눈망울로 그게 평생의 소원이라고 말한다면, 교수로서 그는 기꺼이 등을 떠밀어 줄 것이다. 죽지 않을 만큼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확신이 들 때에 비로소.

   냉정하게 따져보자면, 지금부터 하려는 일에 더 적합한 사람은 아낙사가 아닐 수도 있었다. 카스토리스는 겉보기와는 달리 나무 정원 대학 팔씨름 토너먼트를 제패한 전력이 있었고—여전히 아낙사에게는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였다—히아킨은 동물행동학 권위자인 어머니와 수의사 아버지 밑에서 자란 준전문가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두 사람이 오밤중에 기숙사 뒷산을 배회하게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이건 교육자로서의 원칙에 관한 문제였다.

   장우산을 지팡이처럼 짚으며, 아낙사가 어지럽게 자란 수풀 더미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가로등이 없는 숲 안쪽은 생각보다 더 어두웠다.

   “후-후우, 후-후우…….”

   빽빽한 어둠 너머 올빼미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발밑에서 마른 낙엽이 밟힐 때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낙사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이 시간대의 숲이라는 건, 굳이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데가 있었다. 왼손에 든 손전등이 불안하게 깜빡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여분 건전지를 챙겨올 걸 그랬다. 차라리 휴대폰 불빛에 의존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아낙사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때였다.

   바스락.

   귀를 간지럽히는 소리에 아낙사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손전등 불빛이 먹먹한 어둠을 갈랐다. 그러나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 외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내듯 아낙사가 고개를 저었다.

   다시금 장우산을 단단히 거머쥐고 그가 한 걸음을 뗐을 때였다.

   “아.”

   찾았다.

   잘려 나간 참나무 밑동 아래, 낡고 더러워진 옷가지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 위로 동그랗게 웅크린 형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낙사는 숨을 죽이고 불빛을 좀 더 가까이 비췄다.

   그 형태는 개였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힘없이 누워 있는 개 한 마리. 꼬질꼬질해졌어도 털은 흰색이었고, 웅크린 머리 위로 삼각형의 귀가 뾰족 튀어나와 있었다. 기척을 느꼈는지 삼각형 두 개가 쫑긋, 하고 움직였다.

   개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빛을 피해 눈을 가늘게 뜨더니, 낯선 인간과 그가 들고 있는 장우산을 두세 번 번갈아 본다. 그러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행히도 달려들 기미가 보이지는 않는다. 아낙사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무엇보다도 그를 가장 깜짝 놀라게 한 건, 지저분한 털 아래 숨겨져 있던 밝은 눈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선명한 파란색의 눈동자. 그 속에서 아낙사는 들짐승의 것이 아닌 지성을 느꼈다.

   “어디서 왔니?”

   대답 대신 (그야 당연하지만) 개가 꼬리를 흔들었다.

   “배고파?”

   끼이잉. 끼잉.

   “나랑 같이 갈까?”

   개가 다시 한번 고개를 까딱했다. 그러더니 저울질하듯이 아낙사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녀석은 긴 다리를 시원하게 뻗고 기지개를 켰다. 등줄기가 동그랗게 말렸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멍!”

   하늘을 향해 한 번 짖고, 꼬리를 흔든다.

   – 좋아요, 같이 가요.

   그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오갈 데 없는 들개를 주운 게 아니라, 녀석 쪽에서 룸메이트를 골랐다는 느낌이 드는 건, 아낙사의 상상력이 지나친 탓일까.

 


   교직원 기숙사에는 동물을 들일 수 없었다. 규정상 예외가 있긴 했지만, 방금 주워 온 개를 안내견이나 정서 지원용 동물이라고 주장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아낙사는 녀석을 차에 태우고, 한 시간 거리의 자택으로 향하기로 했다.

   대학 주차장까지 개를 데려오는 일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개는 밤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잔뜩 신이 난 얼굴로 아낙사 곁에서 세 걸음 이상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문제는 개가 깔고 앉아 있던 그 지저분한 옷가지를 처분하려고 할 때 일어났다.

   아낙사는 흙투성이의 더러운 천 조각을 차에 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개는 끝까지 그걸 물고 갈 생각인 듯했다. 몇 번을 시도해도 녀석은 슬슬 뒷걸음질을 치며 아낙사의 손을 요리조리 피했다.

   “이리 내.”

   으르르.

   “착하지.”

   히잉.

   선택지가 줄어들자, 결국 아낙사는 심각한 얼굴로 으름장을 놓았다. 그럼, 그 옷이랑 같이 계속 산에서 살던가.

   “우우우…….”

   그제야 녀석이 아낙사를 올려다본다. 파란 눈에 순간 못마땅한 기색이 스친 것도 같았다. 이내 개가 콧김을 뿜더니, 물고 있던 옷가지를 바닥에 툭 내려놓았다.

   ‘……설마 지금 한숨 쉰 건가?’

   아낙사는 말 없이 그걸 주워들었다. 흙먼지로 얼룩이 지긴 했어도 분명 황토색과 보라색의 옷가지였다. 어디 쓰레기통에라도 갖다버릴까 하다가, 어쩌면 이 녀석의 옛 주인의 물건이거나, 개와 함께 버려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하는 수 없이 아낙사는 더러운 옷을 종이 가방에 넣었다. 종이 가방은 아낙사의 다른 짐들과 함께 자동차 트렁크에 처박혔다.

   그동안 개는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자리를 잡은 채였다. 가죽 시트에 찍힌 발바닥 모양 얼룩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면서, 아낙사는 개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집까지는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가끔 신호에 걸릴 때면 아낙사는 개가 어쩌고 있는지 궁금해져서 조수석 방향으로 흘끔 시선을 던졌다. 그때마다 녀석은 흥미진진한 눈초리로 바깥 풍경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외곽 도로에 접어들자 아낙사가 운전석 쪽 창문을 조금 열었다. 밤바람이 부드럽게 차내로 흘러들었다. 개의 코가 즉시 벌름거리며 밤공기 냄새를 맡았다.

   “기분 좋아?”

   녀석이 이쪽을 돌아보더니, 마치 웃는 것처럼 혀를 내민다. 운전대를 잡은 아낙사의 입꼬리 또한 살짝 올라가 있었다.

 


   집에 도착한 뒤로는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우선 개를 집안에 들일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게 급선무였다. 욕실 바닥은 금세 욕조에서 넘친 더러운 물과 거품으로 흥건해졌고, 개는 생각보다 협조적이면서도 미묘하게 뻗대며 아낙사의 손에 몸을 맡겼다.

   그 과정에서 아낙사는 이제껏 몰랐던 작은 발견을 했다. 녀석의 목에는 작은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목걸이는 얇은 가죽 끈이었고, 끈에 금속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파이? 네 이름이 파이야?”

   “컹!”

   이보다 또렷할 수 없는 대답이었다. 후후, 하고 낮게 웃더니 아낙사가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댔다.

   “쉿, 조용히 해야지.”

  …….”

   녀석이—‘파이’가 볼륨을 확 낮춰 짖었다. 똑똑하기도 하지.

   “착하다, 파이.”

   간간이 이름을 불러 가면서 아낙사는 마저 파이를 씻겼다.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털을 짜고, 수건으로 물기를 털어내기가 무섭게 개는 욕실 밖으로 튀어 나가려고 했다. 어떻게든 녀석을 붙잡아 드라이어 밑에 앉혔을 때는, 이미 새벽이 되어 있었다.

   아아, 피곤하다.

   아낙사가 쓰러지듯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이 쏟아졌다. 점점 멀어지는 감각 속에서 아낙사는 파이의 발톱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를 들었다. 이윽고 파이가 침대 위로 풀쩍 뛰어올랐다.

   안 된다고, 해야… 하는데.

   무거워지기 시작한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파이는 만족스러운 한숨을 쉬면서 이쪽으로 몸을 딱 붙이고 누웠다. 무거워, 파이, 저리 가… 이불 아래에서 아낙사가 녀석을 밀어보지만, 둥그런 덩어리는 이미 잠들었는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서서히 아낙사의 숨소리가 길어졌다. 마법처럼 침실 등이 딱 꺼졌다.

 


   다음 날, 멀리서 들려오는 경적에 놀라 아낙사는 퍼뜩 잠에서 깼다.

   10시 32분.

   지각이다.

   그대로 굳어버렸다가, 아낙사는 이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침대의 절반, 아니,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하얀 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베개 커버조차 파이의 침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세상모르고 뻔뻔하게 잠들어 있는 녀석의 모습에 아낙사가 작게 웃음을 터뜨린다. 어젯밤이 제법 고단했는지, 파이는 작게 코까지 골면서 자는 중이었다.

   잠깐. 이렇게 여유 부릴 때가 아니었다.

   아낙사는 급히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학과 공지방을 열고, 오늘 수업은 15분 늦게 시작한다는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그 밑으로 학생들의 답장이 이어졌지만, 하나하나 읽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는 곧바로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발을 디뎠다.

욕실로 향하던 중에 뒤늦은 깨달음이 아낙사의 머리를 스쳤다. 어젯밤, 어쩌면 그보다 한참 전부터 파이는 한 끼도 먹지 못했을 것이다. 칫솔을 입에 문 채 그가 자책하는 말을 중얼거렸다. 서둘러 냉장고를 뒤적거리자, 기적처럼 유통기한이 남은 닭가슴살이 눈에 들어왔다. 포장을 뜯어 대충 그릇에 덜어 놓고, 시원한 물도 한 대접 따라 두었다.

   “이 정도면 일단 허기는 달랠 수 있겠지.”

   아낙사가 침실을 곁눈질했다. 파이는 이제야 꿈나라를 졸업하고 크게 하품하는 중이었다. 분명 뱃가죽이 납작해지도록 굶주렸을 텐데도 녀석은 아침밥에 달려들지 않았다. 그 대신 아낙사가 집안을 바삐 오가는 모습을 끈질기게 관찰할 뿐이었다. 아낙사는 어딜 가나 파이의 새파란 눈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이지 이상한 개였다.

   집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아낙사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금방 다녀올 테니까 얌전히 있어. 알겠지?”

   눈이 마주치자 녀석의 꼬리가 살살 흔들렸다. 현관문이 달칵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에, 삼각형의 귀가 살짝 옆으로 쳐졌다.

 


   안전 벨트를 매는 아낙사의 시야에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걸렸다. 고개를 든 순간, 아낙사는 눈을 의심할 광경과 마주치고 말았다.

   저만치 떨어진 화단에서, 파이가 바닥에 코를 박은 채 킁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분명히 문을 잠갔을 텐데, 설마 누가 집에 침입하기라도 했나? 덜컥 불안해져서 아낙사는 운전석 문을 열었다.

   “파이!”

   녀석이 고개를 든다. 그 짧은 사이에 대체 뭘 하고 다녔는지, 털이 회색빛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간밤에 저 털을 새하얗게 만들겠다고 갖은 고생을 한 걸 떠올리자 가슴을 내려치고 싶어졌다. 어쨌거나 개는 다친 데 없이 멀쩡해 보이니, 아낙사는 파이의 작은 일탈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대체 어떻게 탈출한 건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이쪽으로 와, 파이!”

   그러나 파이는 한쪽 발을 들고선 망설이며 다가오지 않았다. 아낙사의 시선이 손목시계로 빠르게 미끄러졌다. 11시 17분.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가 화단으로 성큼 다가가, 파이를 붙잡고 안아 들었다. 허리에 적지 않은 부담이 느껴지는 건, 파이가 대형견 치고도 지나치게 무거운 탓이지 아낙사의 근력이 모자란 탓이 아니다. 파이는 별다른 저항 없이 얌전히 품에 안기면서도, 왜 끌려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순진한 눈망울로 인간을 빤히 올려다봤다.

   “산책은 나중에 같이 가자.”

   그래, 자유롭게 나돌아다니는 데 익숙한 들개에게 무슨 잘못을 물을까. 잘못은 전부 문단속을 똑바로 하지 않은 아낙사에게 있었다. 그는 서둘러 집안으로 파이를 들여놓고, 현관문을 쾅 소리 나게 닫았다. 그 즉시 문 너머에서 높은 하울링이 새어 나왔다.

   “안 돼, 파이! 얌전히 있으라니까.”

   긴 울음소리가 한 번 더 이어지더니, 갑자기 뚝 끊어졌다. 아낙사는 잠시 현관문에 얼굴을 대고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심통이 났는지 파이가 집안을 활보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그제야 안심하고 아낙사가 문을 잠근다. 도어락은 물론, 평소에는 귀찮아서 잘 쓰지도 않던 보조 열쇠까지 꺼내 들었다. 문고리를 잡고 두 번, 세 번 세게 흔들어 잠긴 것을 철저히 확인한 후에야, 그는 쫓기듯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아, 15분이 아니라, 30분 늦는다고 공지할 걸 그랬다.




   타나토스가 곡할 노릇이라는 표현은, 아마도 이런 상황을 위해 만들어진 말일 것이다.

   오후 강의가 끝나자마자 아낙사는 가방을 챙겨 강의동을 빠져나왔다. 평소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교수의 행동에, 학생들의 당황한 시선이 날아와 꽂히는 게 느껴졌다. 망설일 틈도 없이 시동을 걸고, 아낙사는 차량 내비게이션 시스템에 목적지를 입력했다. 붉은색 세단을 아슬아슬한 속도로 달려 도착한 곳은 근처 마트. 파이 같은 대형견에게 적절한 사료는 이미 강의 시간표 사이 휴식 시간을 틈타 검색해 둔 터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트렁크에는 대형견용 사료 두 포대가 넉넉히 실려 있었다. 지금쯤 위장이 텅 비었을 파이를 떠올리자 마음이 초조해졌다. 오늘따라 신호에 너무 자주 걸리는 거 아닌가? 아낙사의 손끝이 계속해서 빠르게 운전대 위를 토독토독 두드렸다. 마침내 집이 가까워지자, 그가 건물 근처 주차 공간을 찾아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였다.

   오늘만 해도 벌써 두 번째로, 아낙사는 제 눈을 의심하게 되었다.

  익숙한, 벌써 지나치게 익숙해진 동그랗고 복슬복슬한 뒤통수가 건물 출입구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방금 깎은 잔디 위에서라도 한바탕 구른 모양인지, 잿빛으로 변했던 흰 털이 이번에는 기묘하게 노르스름해져 있었다.

   “파이……?”

   확신 없는 말투로 이름을 불러 보자, 귀를 쫑긋 세운 녀석이 반쯤 고개를 돌렸다.

   정말이지, 타나토스가 와서 통곡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광경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파이가 잠긴 문을 뚫고 나온 걸까, 아니면 집 안 어딘가에 아낙사도 모르는 개구멍이 있는 걸까? 알아보는 건 나중에 할 일이었다. 지금은 파이가 더 멀리 도망가기 전에 어서 붙잡아야 했다.

   “파이, 이리 와.”

   이름을 부르며 아낙사가 바닥을 킁킁거리는 개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아침과는 달리, 파이는 살짝 이를 드러내며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낙사의 인내심은 이제 바닥이 난 상태였다. 그가 오늘 아침처럼 몸을 숙여 파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끄응!”

   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방으로 뻗대며 안기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가, 그만 두툼한 앞발이 아낙사의 팔뚝을 내려치고 말았다. 빡, 하고 제법 큰 소리가 난다.

   “갑자기 왜 이래? 배고파?”

   짐짓 엄한 목소리를 냈지만, 상습 가출견의 몸부림은 가라앉지 않았다. 파이는 눈을 크게 뜬 채로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 눈빛은 마치 ‘이게 아닌데’, 혹은 ‘당신 지금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어’라고 말하려는 듯했다.

   그 상태로 아낙사는 간신히 현관문 앞까지 도착했다. 보조 열쇠를 돌리고, 또 도어락 번호를 누른다. 삐비빅—경쾌한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후우…….”

   발버둥 치는 노란 털 뭉치를 현관에 내려놓고, 겨우 허리를 폈을 때였다.

   두 쌍의 눈이 거실에서 아낙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새하얀 털, 파란 눈.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까지. 그가 알고 있는 파이가 거기 있었다.

   그렇다면 나란히 앉아 있는 저 회색 털의 개는 대체 뭐지?

   그리고 현관 쪽에서 ‘내가 뭐랬어’ 하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는, 방금 데려온 노란 개까지.

   털색과 눈동자 색만 다를 뿐, 세 마리는 완전히 같은 체구에 똑같은 얼굴, 그리고 꼭 닮은 삼각형의 귀를 가지고 있었다.

   “……파이가, 세 마리?”

   하얀 ‘파이’가 고개를 들고 반갑다는 듯이 아낙사의 품에 펄쩍 뛰어올랐다. 나머지 두 마리는 차마 못 보겠다는 듯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아낙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나마 마음의 위안이 될 만한 부분을 찾아보자면, 하루 종일 헛것을 본 것도 아니고, 개가 문을 뚫고 나오는 괴이한 현상이 일어난 것도 아니라는 점이 아닐까? 단순히 아낙사의 착각으로 똑같이 생긴 다른 개를 두 마리 더 데려온 것뿐이었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아낙사는 정말로 파이가 어디 가서 회색이 되도록 먼지를 묻혀 왔거나, 잔디에 굴러서 노란 물이 든 줄 알았다. 눈동자 색을 구분하지 못한 건 그때마다 개들과 꽤나 멀리 떨어져 있었을 뿐더러, 아낙사의 시력이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은 탓이었다. 안경을 맞추라는 조교의 잔소리에 조금만 더 귀를 귀울일 걸 그랬다. 어쨌든 집에 구멍이 뚫린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이 황당한 사태가 조금은—아주 조금이지만—나아 보이기 시작했다.

   아낙사에게 실컷 예쁨을 받고서, 파이, 그러니까 하얀 털의 파이는 나머지 두 마리 사이를 비집고 주저앉았다. 회색 녀석은 별다른 불만이 없는지 바닥에 엎드린 채 숨만 고르고 있었고, 노란 녀석은 파이의 볼을 몇 번 킁킁거리더니 고개를 딱 붙이고 드러누웠다.

   “너희들 원래 아는 사이야?”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굳이 들을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나란히 있으니 ‘파이’들이 얼마나 닮았는지 더욱 선명하게 와닿았다. 눈 색, 털색만 다른 세쌍둥이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세 마리의 청결도도 확연히 차이가 났다.

   꾀죄죄한 털결을 보고 아낙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파이 한 마리로도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남은 두 마리를 씻길 체력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 결국 아낙사는 세 마리를 분리해 놓기로 결심했다. 깨끗한 파이는 오늘 밤 아낙사의 침실에서 재우고, 나머지 두 마리는 각각 서재와 작업실에 들여놓자. 그리고 날이 밝자마자 가장 가까운 강아지 미용실에 예약을 넣자.

   난동을 부릴 거라는 예상과 달리, 노란 녀석은 놀랍게도 순순히 서재로 차박차박 들어갔다. 다른 한 마리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로 아낙사를 따라왔다. 각자의 방에 밥그릇과 물그릇을 넣어주고, 아낙사는 방문을 닫았다. 침실에서는 혼자 남은 파이가 불안한 듯이 방안을 빙글빙글 돌아다니고 있었다. 파이 몫의 사료를 침대 근처에 내려놓은 다음, 그가 새로 깐 이불을 두드렸다.

   “자야지. 이리 와.”

   그러나 파이는 첫날처럼 침대 위로 올라오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굳게 닫힌 침실 문틈을 킁킁거릴 뿐이었다.

   “파이, 자자니까.”

   박박박, 박박박.

   “안 돼.”

   끼이잉…….

   파이의 입에서 높고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파란 눈에는 투명한 눈물마저 고여 있었다.

   – 부탁이예요, 저희를 떨어뜨려 놓지 마세요.

   굳이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파이가 하려는 말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

   결국 백기를 든 건 아낙사였다. 문이 열리자마자 파이가 쏜살같이 거실로 달려 나갔다. 나머지 두 마리의 반응도 비슷했다. 세 마리는 기다렸다는 듯 서로에게 달려들어 금세 한 덩어리가 되었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아낙사는 말 없이 침실 문을 닫았다.

   개의 주둥이 세 개쯤은 너끈히 들어갈 틈을 남겨둔 채로.

 


   “시끄러… 워…….”

   아낙사가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도톰한 솜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그는 형체 없는 상대를 향해 불만을 늘어놓았다. 시끄러워, 날 가만히 내버려둬, 토요일 아침 정도는 늦잠을 자게 해 달란 말이야.

   – “…건 아닌 것 같은…….”

   – “혹시 모르지…….”

   – “…만약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렴풋이 들려오는 말소리는 집요하게 아낙사의 귓가에 따라붙었다. 침대 위 이불이 크게 한 번 들썩였다.

   “으…….”

   짧은 신음을 내뱉고, 아낙사가 상체를 겨우 일으켰다. 어젯밤 사료 포대를 나르느라 혹사한 팔이 뻐근했다. 그러고 보니 파이와 다른 개들은 지금쯤…….

   – “…라나, 이거 먹어 봤어?…….”

   – “쉿, 조용히 해, 파이…….”

   말소리?

   아낙사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바람에 이불이 미끄러져 파이의 물그릇을 적셨다. 물은 간밤에 아낙사가 따라 놓은 상태 그대로, 한 모금도 줄어들지 않은 채였다. 수북이 쌓인 사료도 마찬가지였다.

   이 집에서 아낙사 외의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릴 리 없었다. 그럼에도 침실 문틈으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말소리가 똑똑히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아낙사의 발걸음이 곧장 문 앞으로 향했다. 손잡이를 붙잡고, 망설임 없이 벌컥 문을 열어젖힌다.

   흰색, 회백색, 노란색.

   사이 좋은 세 개의 뒤통수가 나란히 시야에 들어왔다.

   삐죽 솟은 두 가닥 머리카락부터 양옆에 달린 둥그런 귀, 목걸이를 찬 목과 제법 탄탄한 어깨, 너른 등판과 좁아지는 허리 아래로, 아낙사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의 개들이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가운데에 앉은 청년—찰랑이는 백발로 보아 아마도 최초의 ‘파이’였을 녀석이, 아낙사를 돌아보고 밝은 인사를 건넨다.

   “아, 일어나셨어요?”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이 한둘이 아녔지만, 아낙사는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것부터 지적하기로 했다.

   “너희들.”

   세 사람은 세 마리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동시에 반응을 보였다. 등이 반듯하게 펴지고, 세 쌍의 눈동자가 즉시 아낙사를 향했다. 분명 인간의 귀가 달려 있음에도, 머리 위에서 복슬복슬한 삼각형의 귀가 쫑긋 움직이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옷은 어디 두고 온 거야?”

   그러자 파이가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제 옷이라면 지금 트렁크에 있어요. 혹시 버리신 건 아니죠?”

   아. 그제야 아낙사는 파이가 그 더러운 옷가지를 한사코 내려놓지 않으려 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드디어 한 가지 미스터리가 풀린 셈이니, 이건 분명한 성과였다.

   “파이는 그렇다 치고. 그럼, 너희 둘은?”

   “…….”

   “…….”

   노란 머리와 회백색 머리가 서로를 마주 보더니, 입을 모아 대답했다.

   “잃어버렸어요.”

   “읽어버렸습니다.”

   아낙사의 손이 절로 이마를 짚는다. 그래, 잃어버렸다, 이거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카페인, 머리를 콕콕 찌르는 이 두통을 가라앉힐 진한 카페인이 필요했다. 그가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부엌을 향하자, 세 명의 파이들이 우르르 따라붙으려 했다. 아낙사는 단호하게 손을 들어 그들을 멈춰 세웠다.

   “첫째, 내가 가는 곳마다 일일이 따라올 필요 없어. 너희가 무슨 개야?”

   “네? 하지만 저희는 진짜 강아지—”

   “둘째, 내 말을 끊지 마.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커피를 마시고 너희들에게 맞을 만한 옷을 찾아올 때까지, 움직이지 말고 꼼짝 말고 있어. 화장실을 쓰고 싶으면 손을 들던가. 내 말 알아들었어? 알아들었으면 대답해. 파이, 너부터.”

   “넵.”

   “네.”

   “…….”

   “회색 머리. 너도 대답해야지.”

   “……네.”

   커피 머신을 누르는 손이 흥분으로 조금 떨리고 있었다.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호기심 넘치는 여섯 개의 눈동자가 그의 온 몸에 고정되어 있다는 게 느껴졌다.

  “후우…….”

  막 추출이 끝난 진한 에스프레소 샷을 아낙사가 입에 가져다 댔다.

  개를 한 마리 주웠을 뿐인데, 갑자기 세 배로 복잡해진 그의 인생을 위해, 건배.




 

 

 

(아마도)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