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파이논을 억지로 올려보내고 나니 거실은 적막에 휩싸였다. 플로어 램프의 은은한 노란 빛은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따스하고 간질간질하게 보였지만 이제는 기괴하게 느껴졌다. 그 빛을 받으며 떠 있는 저것은 말없이 아낙사와 대치하고 있었다. 아낙사는 다섯 걸음만큼의 거리를 유지한 채 이제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려해 본다.
한밤중 집안에서 반투명한 형체를 발견한다면 보통 취할 행동은 두 가지였다: 1) 까무러치거나, 2) 장식장에서 빠르게 샷건을 꺼내 오거나. 아낙사가 고른 선택지는 제3의 길인 ‘대화를 시도하기’였다.
“하나 묻지. 내 목소리가 들리나?”
“응, 성가신 딱따구리만큼이나 아주 또렷하게 들려.”
소통이 가능함, 체크. 이상한 비유는 지적하지 않기로 하고, 같은 언어를 쓰고 있다는 데 의의를 두도록 하자. 아낙사는 이어서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럼 네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도 들리는 건가?”
유령 같은 형체가 빙긋 웃는다. 아하, 그게 신경 쓰이는 거였구나. “아니.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여기서 너뿐이야. 안쪽 방에서 곤히 잠든 네 누나한테도, 혼자 방에서 고뇌하고 있는 저 백발 청년한테도 들리지 않지. 왜, 저 사람들한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돼?”
식구들을 언급하는 말에 아낙사의 경계심이 다시 올라갔다. 역시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게 좋겠다. 아낙사 혼자만이라면 어떻게든 대처해볼 수 있지만, 누나나 파이논이 엮이기 시작하면 곤란해진다. 어디든 좋으니 멀리, 가능하면 사람이 없는 곳으로 데려가야 했다. 그렇게 정한 아낙사는 둥둥 떠 있는 형체를 돌아봤다. 신발을 신지 않은 발 뒤로 러그가 투명하게 비쳐 보였다.
“장소를 옮길 거니까 따라와. 설마 그 몸으로 벽을 못 통과한다고 하지는 않겠지?”
아낙사가 삐딱하게 웃었다. 유령 비슷한 것이 살짝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린다.
갈 데가 마땅치 않아서 결국 향한 곳은 새벽까지 운영하는 패스트푸드점이었다. 식물성 기름이 축적된 찐득찐득한 바닥이 기분 나쁜 느낌을 주었다. 아무 메뉴나 시킨 뒤 그나마 깨끗한 테이블을 골라 아낙사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건너편 벽의 낡은 라이트박스 광고가 간헐적으로 타닥 소리를 내며 사이사이 침묵을 메웠다.
먹지도 않을 음식은 테이블 위에서 식어가고, 아낙사는 얇은 반소매 티셔츠 한 장만 걸치고 나온 걸 점점 후회하는 중이었다. 세르세스―오는 길에 들은 저 녀석의 이름이었다―는 심심한지 손끝으로 감자튀김을 콕콕 만져 보면서 장난을 친다. 당연하지만 그 손은 감자튀김을 으스스하게 통과했다.
“예전에 내가 어른이 되면 찾아오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말에 세르세스가 장난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아낙사는 그가 감긴 두 눈으로 자신을 뜯어보고 있다는 걸 직감으로 알았다.
“역시 기억하고 있었구나. 대단하네.”
“개인적인 이유로 그날 일을 두고두고 곱씹게 되었거든, 네 덕은 아니고. 그래서 이렇게 지각한 이유가 뭐지? 오다가 길이라도 잃은 건가?”
“네 질문엔 계속 대답해 줬으니까 이제 나도 하나 물어볼 차례야. 아까는 기뻤어? 그 백발 청년과 함께 있을 때 말이야.”
갑자기 화제가 안전히 집 안에 있을 파이논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낙사는 짜증이 확 솟구치는 것이 느껴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넌 분명 기쁘고 행복했을 거야, 평생 이토록 기쁘고 행복해본 적 없을 정도로. 눈앞에 있는 대상이 아름답다고도 생각했을 거고. 내 말이 맞지?”
“…….”
“그렇다면 축하해, 네 누나의 소원이 드디어 이뤄졌어.”
“뭐?”
덜그럭, 균형이 맞지 않는 철제 의자 다리가 기우뚱한다. 아낙사의 심장이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 동요해선 안 된다고 이성이 말해도 아낙사는 어쩔 수 없이 주먹을 꽉 쥐게 되었다. 한편 세르세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느긋한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정말이지 그건 애매한 소원이었어, 「동생의 눈에 보이는 세상이 기쁘고 아름답기를」―이렇게 애매한 소원은 깜빡하는 사이에 흘러가 버리기 마련인데, 제대로 이뤄져서 다행이야. 나로서도 네가 사는 동안 최대한 행복했으면 하거든. 자, 그럼 지금부터 안타까운 소식을 들려 줄 차례인데, 준비됐어?”
“뜸들이지 말고 어서 말해.”
“소원이 이뤄진 대가로 난 네 누나의 한쪽 눈을 가져갈 거야.”
귓가가 윙윙 울려서 아낙사는 이어지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바닥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안 돼.”
“―그때 그 연못을 아직 기억하지? 사람들이 그 연못에 빈 소원은 이뤄지기도 하고, 이뤄지지 않기도 해. 며칠 안에 원하는 걸 얻는 행운아가 있는가 하면 십수 년을 기다려야 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 하지만 딱 하나, 예외 없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법칙이 있어. 바로 소원을 이룬 사람은 누구나 그에 상응하는 값을 치러야 한다는 거야.”
“등가교환의 법칙….”
“맞아. 여전히 똑똑하구나. 네 누나가 널 위해 아름다운 시야를 바랐으니 나는 그 대가로 한쪽 눈을 수확하러 왔어. 기왕 말이 통하는 사람의 아이를 만났으니 직접 설명해 주고 싶었거든. 이제 이걸로 네 소원도 이뤄졌네, 소원을 들어주는 연못의 비밀을 알게 된 소감이 어때?”
하. 아낙사가 큰 소리로 비웃었다.
“허술하군. 계산도 엉터리야. 고작 내게 한순간의 만족감을 준 걸로 누나한테서 남은 평생의 시야 반쪽을 가져가겠다고? 이게 어떻게 등가교환이지? 누가 봐도 네 쪽으로 기울어진 저울이잖아.”
세르세스가 억지를 부리는 인간의 어깨를 닿지 않는 손으로 쓰다듬었다. 공허한 행위였지만 손짓에 담긴 연민만큼은 진심이었다.
“그건 순간의 행복 같은 게 아니었어. 너도 알고 있잖아.”
물론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낙사는 자신이 파이논을 사랑함을 안다. 사랑하기를 멈출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이 감정 때문에 제 누나가 희생된다면, 그게 아무리 누나가 바란 소원의 결과라 해도 아낙사는 자신을 끝없이 저주할 것이다. 사랑하고 사랑받을 자격 없는 아낙사고라스, 영원히 홀로 외로워지리라.
모순의 교차로에 서서 아낙사는 생각했다. 손에 쥔 창도 방패도 망가뜨리고 싶지 않은 사람은 그것들이 서로 맞부딪힐 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간단한 해결책 하나: 창과 방패가 충돌하는 중간에 서 있기만 하면 된다.
“내 눈을 대신 가져가.”
“진심이야?”
“어차피 두 개나 있는데 하나 정도 없어지는 게 뭐 어때서. 시작해, 수확하는 자. 난 준비됐으니까.”
아낙사가 눈가를 덮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이 눈으로 보는 최후의 풍경이 세르세스와 그 뒤로 비쳐 보이는 햄버거 광고라니. 비참한 것도 이 정도면 희극이었다. 철학자는 고개를 젖히고 시원하게 웃어버렸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남은 눈으로 올려다보니 어느덧 하늘엔 옅은 새벽빛이 번지고 있었다.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주택가는 아직 깊은 잠에 든 채였다. 아낙사는 고개를 들고 오랜만에 맛보는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오는 내내 말이 없네. 침묵을 즐기는 중이야?”
불쑥 튀어나오며 세르세스가 묻는다. 아낙사를 감돌던 보기 드문 평화가 깨졌다.
“너만 사라진다면 더 완벽했겠지.”
“안됐네, 아직 완전히 작별할 때가 아니라서. 네 몫의 대가가 아직 남아있다는 걸 잊지 마. 그게 뭔지 궁금하지는 않아?”
아낙사는 손목을 까딱이는 걸로 세르세스의 질문을 흘려보냈다. 눈 다음에는 뭘까, 비밀을 들은 귀? 잠이 부족한 뇌가 그를 조각조각 운반하는 세르세스의 이미지를 상상한다. 눈, 귀, 심장… 하나씩 모아서 마지막엔 아낙사고라스 모양의 인형이라도 만들 생각인가? 그의 입가가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음, 좋은 생각을 하는 표정은 아니네.”
“그 대가인지 뭔지를 어서 수확해 가면 다시는 내 얼굴을 볼 일도 없겠지.”
“보기 싫다고 한 적 없어.” 세르세스가 빙 돌아서 아낙사가 자기를 볼 수 있는 위치로 옮겨갔다. “이제 너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렴. 다시 만날 때까지 네게 남은 시간을…”
아침 해와 함께 세르세스의 형상이 서서히 풍경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또 너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게 좋을 거야.”
마지막엔 충고하는 목소리만 남았다. 서늘한 새벽바람이 불어오자 메아리는 거리로, 골목으로 흩어져버렸다.
7.
파이논은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었다.
늦은 밤 아낙사 혼자 집 밖으로 나가는 소리를 들었을 때 파이논은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당장이라도 운동화를 구겨 신고 뛰쳐나가고 싶은 걸 억누르고 또 억누르면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4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파이논은 딱 한 번 아낙사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 보았다. 진동 소리가 옆방에서 들려온다는 걸 깨닫자마자 그는 바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일어나서 얼굴에 찬물을 끼얹고, 한결 차분해진 마음으로 계단을 내려간다.
어쩐 일인지 거실 플로어 램프가 켜져 있어서 그가 스위치를 내렸다. 그제야 거실에는 새벽 4시다운 어둠이 내려앉았다. 깜깜한 가운데 파이논이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기다리다 보면 아낙사는 돌아올 것이다. 다시 얘기하자고 했던 그 말을 파이논은 믿는다.
현관문이 부드럽게 닫히는 소리가 파이논을 잠에서 깨웠다. 어느새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눈부시게 밝았다. 몽롱하고 따끈한 잠기운에 취해 파이논은 잠시 자신이 왜 거실에서 잠들었는지 떠올리지 못했다. 그러다 간밤에 있었던 일이 되살아난 순간, 그가 소파에서 굴러떨어지다시피 일어났다. ―아낙사!
멀리 갈 필요는 없었다. 그를 밤새 애타게 만들었던 장본인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당당하게 집에 돌아와 있었다. 저쪽에서 달그락거리며 뭔가를 찾고 있는 민트색 뒤통수가 보인다. 파이논은 성큼 다가가 뒤에서 그를 끌어안았다. 뺨에 닿는 부드러운 머리카락에서 새벽 공기의 느낌이 났다.
“어딜 가셨던 거예요.”
“파이논.”
“제가 얼마나, 얼마나….”
차마 이어지지 못하는 문장이 아낙사의 마음을 건드렸다. 살포시 파이논의 왼팔에 그가 얼굴을 기대 본다. 아, 따뜻하다.
“파이논, 혹시….”
“네, 아낙사. 듣고 있어요.”
“혹시 동전 가진 거 있어?”
그게 과연 지금 상황에 어울리는 말일까요, 아낙사 교수님? 파이논은 그렇게 반격하고 싶은 걸 꾹 참고 허리를 감싼 팔에 힘을 더했다.
“없으면 신경 쓰지 말고.”
“네, 있어요. 있을걸요. 아마 지갑에 남은 게 좀 있을 거예요. 그런데 아침부터 동전은 왜 찾으세요?”
서랍 안에서 아낙사가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병에는 <벌금통>이라는 라벨이 붙어 있었다. 이거라면 파이논도 본 적이 있었다―그냥 본 적 있는 정도가 아니라, 실은 소소하게 몇 푼 기여하기까지 했다. 게임 경쟁전에 심취하느라 빨래 개는 걸 잊은 날이었다. 엄숙한 얼굴로 누나가 <벌금통>을 내밀었고 파이논은 수중에 있는 동전을 전부 털어 넣었다. 그때만 해도 통이 제법 차 있었는데,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마치 어떤 민트색 누군가가 간밤에 몰래 훔쳐 간 것처럼. 그러고 보니 범인은 늘 범행 장소에 돌아온다고 했던가?
“지갑을 가지고 나갈 시간이 없었어.” 수중에 붙잡힌 범인이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누나한테 들키기 전에 좀 채워 놔. 나중에 갚을 테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안 갚으셔도 되니까 대신 제가 묻는 말에 대답해 주세요. 꼭 솔직하게 대답해 주셔야 해요.”
“음. 일단 말해 봐.”
“대체 뭘 사신 거예요?”
“……감자튀김과 드로마스 모양 너겟 세트.”
“그것참….”
품 안에서 아낙사가 꼼지락거렸다. 파이논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의 목덜미에 마구 얼굴을 파묻었다. 그것참 맛있었겠네요, 하고 웃는 목소리가 아낙사의 목을 간지럽힌다. 아낙사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아낙사의 왼쪽 눈이 있던 자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강해졌다. 세르세스가 정확히 어떤 방법으로 안구를 수거해 갔는지는 몰라도, 아낙사는 인간이 만든 진통제는 거의 효과가 없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혹시 몰라 방문을 잠그고 몇 가지 떠오르는 점들을 기록해 본다. 복용약이 통하지 않으면 바르는 소염 진통제를 써볼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아까부터 아무리 시도해도 감긴 눈이 벌려지지 않았다(세르세스의 짓인가?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다). 그러고 보니 구급상자에 안대가 있었던가, 만약 없다면 약국부터 들러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머리맡에서 휴대폰이 짧게 한 번 진동했다. 파이논으로부터 온 메시지가 보였다.
- 당신의 파이논의 설문 시간입니다. 협조 부탁드려요. 심심하시면 한 번, 안 심심하시면 두 번 벽을 두드려 주세요.
어린애도 아니고. 코웃음 치면서도 아낙사가 노트를 치우고 벽을 두 번 콩콩 두드렸다. 그러자 응답하듯이 옆에서 벽을 한 번 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낙사는 아닐지 몰라도 자기는 심심하다는 거다.
- 힘이 남아도는 모양이네. 가서 누나 정원일이나 도와.
- 교수님은요?
- 피곤해. 좀 자야겠어.
아낙사는 휴대폰을 쥔 채 다음 메시지가 뜨기를 기다렸다. 금방 올 거라고 예상한 답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곧 잠긴 문밖에서 기웃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파이논이 문에 대고 말한다. 속삭임보다는 크고, 대화보다는 작게.
“좋은 꿈 꾸세요, 아낙사.”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아낙사는 욱신거리는 눈가를 애써 무시하며 얕은 잠에 빠져들었다.
8.
첫걸음을 떼자마자 파이논은 벽을 만났다. 담당 직원은 파이논이 낸 서류를 대충 훑어보자마자 안 된다는 말과 함께 문서를 돌려주었다. 파이논은 순진해 보이는 고개 각도, 최대한 불쌍한 눈망울을 유지하면서 물었다.
“안 돼요?”
“학생분, 이건 교내 안내견 등록서잖아요.”
“네.”
직원의 시선이 파이논을 위아래로 훑었다. 혹시 숨겨 놓은 강아지 귀나 꼬리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말이었다.
“그리고 파이논 학생분은 강아지가 아니고 사람이구요.”
“그게 큰 문제가 될까요?”
파이논은 그가 작성한 서류를 살짝 내려다본다.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갑자기 아낙사가 안대를 쓰고 나타났을 땐 누나도 파이논도 깜짝 놀랐고 걱정하는 마음이 앞섰다. 당분간 안대와 함께 살아야 할 아낙사를 위해, 그는 집에서도 밖에서도 아낙사의 안내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다만 학교에서 취급하는 서류에는 안내인(人) 등록서가 없어서 한 글자 다른 안내견(犬) 등록서를 가져왔을 뿐이다. 견종 칸은 하는 수 없이 비워 두었고, 예방접종 증명서는 뭘 써야 할지 몰라서 물음표를 적었다. 종은… 인간이라고 하면 되나?
골똘히 생각하는 파이논의 표정을 보고 직원은 큰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은 ‘네 교수님이 널 어떻게 감당할까’ 라고 말하는 듯했다.
“아낙사 교수님도 동의하신 일인가요, 이거?”
“여쭤보면 되죠. 얼른 다녀올게요!”
“아, 안 돼, 그러지 마세요, 학생분! 제발!”
직원의 손이 이미 사라진 옷자락을 허망하게 더듬었다. 달려가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도저히 쫓아갈 수가 없었다. 패배를 인정하고 직원은 창구로 돌아갔다.
몇 분 후 직원의 직통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아낙사고라스 교수였다. 그는 무척 정중한 말투로, ‘우리 파이논’의 무례한 행동을 보호자이자 교수로서 대신 사과한다고 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직원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 사람들 대체 무슨 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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