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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낙사] (현대AU) 우리 교수님이 이렇게 휴강하실 리 없어

우리 교수님이 이렇게 휴강하실 리 없어
The Curious Case of Ruan Mei’s Cookies

 

 

  “다 모였나?”

  일시, 9월 22일 16시 45분. 장소, 공과대학 제2회의실. 상석에 앉은 대학장 마담 “더 헤르타”는 15인용 타원형 유리 테이블에 둘러앉은 인물들을 하나하나 무심하게 훑어봤다.

  먼저 마담 헤르타를 기준으로 오른쪽의 아스타. 항공우주공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이자 오늘 회의에는 서기 자격으로 참가했다. 뭐, 그건 사실 구실일 뿐이고, 한가해 보이길래 재미 있는 구경 하자며 헤르타가 막무가내로 끌고 온 거나 마찬가지지만. 한 자리 건너서 닥터 베리타스 레이시오. 수리물리학부와 기계공학과, 생명윤리정책연구소에 겸직하고 있는 인재다. 특이사항이라 한다면, 여기 모인 얼굴들 중 (임시 서기 아스타를 제외하고) 노트와 펜을 챙겨 온 유일한 인물이라는 점일까. 나머지는 학장이 소집한 회의라는데도 설렁설렁 빈 손으로들 참가했다. 다들 다음 분기 교원 실적 평가를 기대하길 바라지.

  레이시오 교수 건너편에는 칼립소아낙사고라스가 쌍둥이처럼 나란히 앉아 있다. 둘은 인지과학과 소속으로, 돌아가면서 서로 학과장 보직을 넘겨주고 넘겨받고, 또 넘겨주고 넘겨받는 걸로 유명하다. 그럴 거면 그냥 한 사람이 계속 하지 그래?

  평가는 이만 하면 됐고, 이제 전부 모인 것 같으니 이만 시작해────

  “잠깐.”

  한 사람이 비는데?

  “학장님, 유전공학부 완·매 교수님은 지금 쿠키를 식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아스타가 번쩍 손을 들며 외친다. 완·매에게 미리 문자를 보내놓은 게 분명했다. 역시 똘똘한 아스타 연구원, 이 학장 헤르타 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양자 얽힘처럼 잘 알아차린다니까.

  거두절미하고, 이제 시작해도 되겠다.

  “각자 바쁜 사람들이니 빠르게 진행하자고. 칼립소?”

  이름이 불린 칼립소 인지과학과장이 목청을 가다듬더니 말한다.

 

  “존경하는 동료 교수님들, 그리고 학장님. (“아, 됐어, 됐어. 인사는 생략하고 본론만 말해.”)

  저는 오늘 학과장으로서 제 마음을 너무나 괴롭히는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학장님께 이 문제를 상의 드리자, 회의를 소집하자고 하시더군요. 음, 한 교수님은 아직 안 오셨지만요.

  “다들 아시다시피 9월은 새 학기가 시작되는 달이죠. 학생들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교수들도 긴장되는 달 아닌가요. 듣자 하니 레이시오 교수님은 4과목 모두 정원이 꽉 차셨다던데, 부럽네요. 우리 아낙사고라스도 그런 날이 오면 참 좋을 텐데……. (“이봐, 세르세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아낙사고라스 얘기가 나오니 말인데. 여러분들은 그가 이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지금 연속해서 네 번 휴강 공지를 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네, 제대로 들으신 게 맞아요. 네 번. 학과장으로서, 저는 너무 걱정이 됩니다. 아낙사고라스, 너 같은 평판의 교수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야. 다른 모든 방면에서 최악의 평가를 받아도 수업에 대한 열정만큼은 강의평가 5점 만점에 5점이었잖아. 그러니 다같이 합심해서 아낙사고라스 교수를 괴롭히는 문제가 뭔지 알아봅시다. 저흰 모두 개인주의를 사랑하는 학자들이지만, 또 동료니까요.”

 

  “어처구니없군.” 

  닥터 레이시오의 얼굴에는 이미 석고상 가면이 씌워져있었다. 가면을 통해 말하느라 목소리가 조금 울린다. 책상 위에 놓인 메모지에는 ‘아낙사고라스’, ‘휴강’, ?라는 단 세 단어가 적혀 있었다. 마지막 물음표 위로 여러 번 덧칠한 흔적이 보인다.

  “어떤 교수가 자기 방식대로 수업하는 건 남이 왈가왈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하물며 네 번의 휴강이 있었다고 해도, 바로 보충했다면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지?”

  “오오, 닥터 레이시오는 동료 교수들에게 제법 마음을 쓰나 봐? 보강 일정까지 파악하고 있네.” 

  헤르타가 슬그머니 수를 던져 본다. 하지만 석고상 가면이 표정을 드러낼 리 없었다.

  “흥. 강의실을 지나는 길에 보강하는 모습을 우연히 봤을 뿐이야.”

  “그래, 좋아. 보강을 철저히 하고 있다면 학장으로서 더 할 말 없지. 아낙사고라스, 그래도 휴강이 너무 잦은 건 감점이야. 컨디션 관리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내 몸 상태는 평소와 다를 바 없다고, 아낙사가 대답하려는 순간이었다. 

  회의실 문이 열리고 은은한 미소를 지은 완·매가 마침내 등장했다. 트레이 위의 향긋한 냄새가 회의실 내부를 가득 채운다. 아스타는 활짝 웃고, 매사 까다로운 학장마저 인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늦어서 미안. 평소보다 손이 많이 가는 요리법이어서 시간에 맞추지 못했어. 그래도 이 학생이──” 완·매의 뒤에서 백발의 대학생이 머리를 쏙 내민다. “이 학생이 도와준 덕분에 여기까지 쉽게 나를 수 있었지. 고마워, 이름 모를 학생.”

  “파이논이에요. 저야말로 도울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교수님!”

  파이논이 이름을 댄 순간, 마담 헤르타와 아낙사고라스의 눈길이 마주쳤다. 헤르타는 그에게 혼돈을 예고하는 미소를 씩 지어보였다.

  “이렇게 기특한 학생을 그냥 보낼 수 없지. 여기까지 왔는데 빈 손으로 가지 말고, 완·매의 쿠키 하나 먹어봐.”

  “어, 그래도 되나요?”

  “파이논, 아무 냄새도 안 나는 쿠키까지 탐낼 정도로 배가 고픈 거야? 그냥 학생 식당을 가지 그래.”

  그 말에 회의 테이블에 둘러 앉은 모든 인물이, 헤르타부터 칼립소에 이르기까지, 아낙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완·매는 여전히 차분한 태도로, 쿠키가 가득 쌓인 트레이 두 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향긋한 창조물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 말한 대로 이 쿠키를 굽는데 손이 많이 갔어. 재료 배합에 특히 신경을 썼지. 특정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재료에 첨가된 성분 때문에 쿠키 향을 느낄 수 없을 거야. 이 바이러스의 특징은…….”

  “간헐적인 고열, 어지러움, 길어진 수면 시간.” 헤르타가 끼어든다.

  “그리고 체액과 타액으로 전염된다는 거지.”

  잠시 제2회의실에 정적이 감돌았다. 칼립소의 어깨가 미친 듯이 떨리며 웃음을 참는 걸 제외하면, 아무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 침묵 위로 “더 헤르타”는 최후통첩을 내리듯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 또 쿠키 냄새 못 맡는 사람?”

  얼굴이 새빨개진 백발 제자 하나가 손을 들었다. 뒤따른 아수라장이 어떤 모습이었을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애초에 아낙사고라스 교수는 어째서 그 바이러스에 걸린 거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의 연구가 IRB(생명윤리위원회) 심의를 늘 아슬아슬하게 통과하거나 멋지게 탈락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주 간단히 결론 내릴 수 있었다.

  유전공학부에서 만든 신종 바이러스를 실험해 볼 대상이 자신의 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에 대해 묻는다면 그는 아마도,

  “이게 다 닥터 레이시오가 쥐들에게 이름을 붙여 놔서 그래. 이름을 부르면 알아듣고 달려온다고.” 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