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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낙사] 아낙사 선생님을 깨우는 올바른 방법





  ① 먼저, 아낙사고라스를 발견합니다.
  
  - 지금 가도 될까요? 오늘도 면담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올 거면 얼른 와.
  조금 전 아낙사와 나눈 전서 메시지를 다시 떠올리자 파이논은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고 말았다. 아낙사가 본다면 안면 근육에 힘이 풀렸다고 볼을 꼬집힐 듯하다. 어쨌거나 아낙사가 ‘얼른’ 오라고 했으니, ‘얼른’ 가는 게 착한 학생의 도리였다. 파이논은 식당에서 아낙사의 연구실이 있는 건물까지를 15분 만에 주파하는 업적을 세우며, 또 한 번 나무 정원 익명 커뮤니티를 떠들썩하게 달구게 된다. 본인은 몰랐겠지만.
  “선생님, 저 왔습니다,” 라면서 문을 두드릴 수 있다는 건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문에 바짝 붙어서 파이논은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렸다.
  다시 노크해도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지막 메시지가 온 뒤로 수 분 만에 무슨 급한 일이 생겼을 거라곤 상상하기 힘들었다. 결국 파이논은 마음속으로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외치며 문고리를 잡아 열었다.
  아낙사고라스가 웅크린 채, 책상에 엎드려서 자고 있었다.


  ②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하세요.

  잠시 여러 가지 정보를 받아들이느라 파이논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아낙사가 양 팔에 얼굴을 묻은 채 곤히 잠들어 있다. 그 아낙사고라스 선생님이 이렇게 무방비하게 흐트러진 모습으로 자고 있다. 혹시나 해서 어깨가 오르내리는지를 관찰했다. 야트막하지만 제대로 숨을 쉬고 있다. 
  그제야 안심이 되어 여러 가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평소와 달리 풀어 내린 머리라던가. 또 예를 들어 케이프를 벗은 얄팍한 어깨 위를 담요처럼 덮은 저 큼지막한 셔츠라던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해서 지난 며칠간 파이논이 기숙사 방을 뒤집어엎게 만든 바로 그 셔츠 말이었다. 이제 보니 죄 없는 룸메이트에게는 제법 미안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파이논은 앞으로 더, 더 많은 셔츠를 사서 면담 후에 깜빡 잊고 두고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③ 이름을 불러 봅니다.

  선생님을 부를까 말까 파이논은 한참을 고민했다. 피곤하실 텐데 깨우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그래도 이렇게 의자에서 불편하게 자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푹신한 표면에 (음, 파이논 같은) 기대어 눕는 게 낫지 않을까? 
  파이논은 상체를 기울여 귓가에 대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잠결에 아낙사가 살짝 움찔하는 게 보인다기보다 느껴질 정도로 둘은 가까운 거리였다. 하지만 아낙사는 조금 들썩였을 뿐, 이름을 부르는 정도로는 깨어날 것 같지 않았다. 


  ④ 가볍게 흔들어 봅시다. 이때, 거칠게 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이번에는 천천히, 아주 부드럽게 어깨를 흔들어 보았다. 책상에 얼굴을 묻은 자세였던 아낙사가 뭐라고 웅얼거리면서 몸을 뒤척인다. 얼굴을 덮고 있던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면서 그 사이로 반짝 뜬 한쪽 눈이 파이논을 또렷하게 보고 있었다. 심장이 덜컥하면서도 파이논은 반사적으로 미소를 지었다.
  “아, 드디어.”
  “불편해.”
  그야 그런 자세로 주무시니까 불편하실밖에요. 파이논이 대답하려고 했지만, 직후 아낙사가 취한 행동 때문에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아낙사는 잠결에 따뜻한 체온을 발산하는 무언가, 단단하고 형체가 있는 무언가를 찾아 뒤척였다. 어깨를 붙잡은 파이논의 부드럽지만 단단한 손아귀 힘, 거기에 연결된 튼튼한 팔뚝은 그야말로 그가 찾아 헤매던 최고의 재료였다.
  파이논의 팔뚝을 아낙사가 제 쪽으로 잡아당겼다. 그리고 베개처럼 베고 누웠다. 생각보다 말랑하고 부드러운 볼이 팔에 닿았을 때, 파이논은 이를 꽉 깨물고 열두 티탄의 이름을 거꾸로 읊기 시작했다. 
  아아, 티탄들이시여, 이게 제 시련인가요?


  ⑤ 모든 방법을 다 썼다면, 포기합시다.

  “…….”
  곤히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어정쩡하게 잡힌 팔을 빼낼 마음이 도저히 들지 않았다. 언젠가 조교인 히아킨으로부터 선생님은 실험에 열중하면 몇 날 며칠이고 밤을 새우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던 게 떠올랐다.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나였을까? 그렇다면 면담 같은 건 거절해 주셨어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선생님이 찾아오는 학생을 거절할 리 없다는 사실 또한 파이논은 잘 알고 있다. 바라건대 선생님의 이런 마음을 이용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기를, 자신과 제자들이 든든한 벽이 되어주기를.
  “푹 주무세요, 선생님.”
  아낙사가 꾸물거리며 뒤척이는 건 파이논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그나저나 이거 생각보다 불편하네요, 하하… 팔도 좀 저린 것 같고. 선생님은 편하세요?”
  고른 숨소리가 대답이 되어주었다. 그럼 됐어요, 파이논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